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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ELS 사태와 금융감독
구분 윤승욱, 국제금융 전략가(중국농업은행)
등록일 2024-03-18
첨부
조회수 508
국내 이슈 분석

 
 
ELS 사태와 금융감독
 
윤승욱, 국제금융 전략가 (중국농업은행)
前 JP모건 이자율 및 외환 딜러
前 미래대우 채권 애널리스트
jsyoon01@gmail.com
 


들어가며

한국인으로서는 흔치 않게 런던에서 채권 및 외환 장외파생 트레이더 및 전략가로 근무하면서 필자는 그간 한국의 금융업계와 경제관료들이 금융과 경제현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국제금융가의 일반적인 시각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고 느껴왔다. 금융시장의 근간이 되는 금리와 외환에 대한 이해부터 정치경제학 전반에 이르기까지 잘못 알려진 개념들은 한국인들의 시각에 일종의 '홈바이어스(home-bias)'를 형성함으로써 생각과 견해의 보편성과 타당성을 저해한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이 현재 한국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까지 작용한다고 진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사회가 당면한 고질적인 문제들은 기존의 방식과 사고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지 않고서는 해결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올해 들어 세계 증시는 편차가 있어도 대체로 당초 기대보다 좋은 성과를 보이며, '노 랜딩(No landing)' 즉, 착륙은 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유독 한국 경제는 지표상의 미약한 개선이 관찰되나 국내 경제의 흐름이 무겁다. 대형 금융사고도 줄지어 터지고 있다. 가계부채, 부동산 PF, 전세사기, 해외부동산 투자손실, 홍콩 ELS 사태 등 모두 조 단위의 대형 사고들이다. 레고랜드 사태로 이미 수십조 원의 공적자금이 시장에 투입되고 있는 상황 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금융기관들과 당국은 이렇다 할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랜 기간 방치한 탓에 문제가 눈덩이 식으로 불어난 상태라 창조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사소한 문제에는 과도하다 할 정도로 규제하는 반면, 큰 자금이 걸려있는 문제들은 방치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러한 사회적 양태는 막대한 후과(後果)를 수반하기에 언제까지 지속될 수는 없다. 구조적 침체와 유례가 없는 저출산과 자살율에 직면한 이 시점에서는 더 이상 가계부문이 이러한 불균형을 감당해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올해 상반기 10조 원 가량의 손실을 앞두고 있는 소위 '홍콩 ELS 사태'를 통해 한국 금융시장의 문제점에 대해 근본적인 고찰을 해본다. 이 사태가 단순히 ‘불완전 판매’의 문제로 축소되어 다뤄지고 있는 현 상황은 다음 위기를 방치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따라서 당장의 해결책을 넘어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구조적인 맥락에서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이 사태의 어떤 부분이 개별적인 문제로 국한되고, 어떤 부분이 한국의 금융업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문제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나아가 금융규제의 관점에서는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지 고찰해 본다.

한국 금융회사들의 개인투자자들에 대한 금융상품 판매 영업방식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 영업방식이란 단순히 창구에서의 차원이 아닌, 한국 금융산업 전반의 영업방식을 포괄한다. 이번 사태를 독립적인 사태로 바라보기보다, 한국금융의 구조적인 문제와 규제의 맥락에서 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컨대, 과거부터 한국의 금융업계가 대대적으로 벌인 해외투자 열풍은 대부분 말로가 좋지 못하였다. IMF 이전부터 러시아채권, 동남아채권 등에 데인 후 "올스톱"이라는 말 한마디로 긴 공백기를 보냈다. 세계화 흐름에 발맞춰, 한국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 경제로 변모해 가는 동안 국내금융업계는 국내시장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 후 일본주식, 중국주식, 브라질채권을 비롯해 다수의 해외투자 캠페인들이 있었으나, 성공 사례는 드물다. 투자의 대상은 바뀌지만, 사고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대형사고가 되풀이 되는 기저에는 한국 금융산업의 고질적인 영업방식이 있지는 않은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전문성 문제도 있지만, 국내시장과 달리 해외투자에 대해서는 한국 내에서 문제를 봉합할 수 없다는 속성도 한몫한다. 즉, 국내와 달리 해외시장에서는 반칙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차이도 한몫한다는 말이다.


 

ELS의 원리

ELS는 구조화 상품이라는 금융 상품의 일종이다. 구조화 상품이란 쉽게 설명하면 시중의 채권보다 더 높은 금리를 주는 고금리 상품인데, 부도날 위험이 높아서, 즉 신용도가 낮아서 고금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미지급 조건에 대한 대가로 고금리를 받는 상품이다. 그 미지급 조건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상품의 이름도 정해지고 상품의 성질이 나뉘어지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그 조건이란 ‘특정 지수가 특정 선을 넘지만 않으면’이라는 조건이다. 이 때의 특정 지수를 그 상품의 기초자산이라고 하는데, 기초자산이 주가지수이면 Equity(주식)-Linked(연계) 상품이라 부르고, 금리나 통화 등 다른 자산에 연계되면 일반적으로 DLS(Derivatives-Linked Securities, 파생결합증권)라 통칭한다. 주식의 변동폭이 다른 자산들에 비해 크기 때문에 국내에 판매된 ELS의 잔량은 여타 구조화 상품 중 가장 많다(아래 표 참조).
 

                                        <표 1> 파생결합증권 발행·상황·잔액 현황 (단위: 조원)
구분
21년 상반기
21년 하반기
22년 상반기
발행
상환
잔액
발행
상환
잔액
발행
상환
잔액
ELS 35.6 42.6 53.3 36.6 31.5 57.5 23.6 12.9 66.8
DLS 9.5 9.6 26.9 7.6 7.2 27.2 5.7 4.7 28.0
전체 45.0 52.2 80.2 44.2 38.7 84.7 29.3 17.6 94.9
(출처: 금융감독원)
 


해당 지수가 도달하지 않아야 할 상한 또는 하한선은 가급적 넓게 잡기 때문에 대체로 도달할 확률이 매우 낮다. 그래서 고금리의 이자가 지급될 확률이 높다. 물론 좁게 잡을수록 금리는 올라가지만, 그러면 만기 중에 조건이 닿아서 목표 금리를 지급받지 못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대부분 만기가 3년 내지 5년이지만, 통상적으로 경제위기와 같은 이변이 아닌 경우 고금리를 지급하고 나면 중도에 자동 상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 투자자는 다시 재투자를 하게 된다. 그렇게 시장은 10여 년 넘게 잘 돌아가며 성장을 거듭하였다. 자연히 인기가 높았고 자금이 몰려들었다.

지금에 와서 우리는 이 상품을 문제시하고 있지만, 저금리 시절에는 없어선 안될 상품이었다. 저금리로 인해 수요가 많았고, 그에 비해 시장의 변동성에 대한 값은 상대적으로 컸기 때문에, 말하자면 '변동성을 팔아서' 추가금리의 형태로 내어줄 수 있는 기회가 컸기 때문이다. 특히 채권의 형태로 만기가 있는 상품에 투자해야 하는 보험사들을 비롯한 많은 금융회사들에게 이 상품은 필수적인 투자처였다. 구조화 채권이 아닌 일반 채권으로는 리스크 대비 타산을 맞출 수가 없는 저금리 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츰 기회는 줄어들었다. 자금이 몰리기 시작하자 그 확률이 낮은 조건에 대한 가격은 수요공급의 원리에 의해 점차 비싸지게 되었고, 동시에 고금리라는 보상은 낮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지수 하나를 기초자산으로 썼지만, 점차 한 개씩 두 개씩 지수를 추가하는 형태가 되고, 처음에는 세 지수가 동시에 도달하는 조건이었던 것이 나중에는 여러 개 중에 하나라도 도달하는 조건으로 불리하게 바뀌어 갔다. 물론 리스크를 추가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추가금리가 적더라도 기존의 보수적인 조건의 상품들을 선택할 수 있었다. 리스크를 추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홍콩의 소위 'H지수'가 특히나 인기였다. 변동성이 높기에 금리 제고 효과가 높다. 그런데, 바로 그 지수가 이번에 중국발 위기로 인하여 크게 하락하며 한국의 ELS 투자자들에게 대규모 투자손실을 발생시킨 것이다.

이렇게 투자수요가 계속 몰리다 보니, 점차 미지급 조건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추가 금리가 점차적으로 줄어들어, 어느 시점부터는 이자뿐 아니라 원금도 일부 미지급될 수 있는 구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자가 크게 증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실현될 확률은 현저히 낮은 조건들이었기에 그 또한 공격적인 성향의 투자자이거나 혹은 특정한 뷰(view)를 지닌 투자자들에게는 수요가 있었다. 하지만, 원금손실이 가능하다는 점은 상품의 성격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리스크 고지는 강화되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판매자는 원금손실이 가능한 ELS라는 것은 같은 ELS라 하더라도, 투자자의 입장에서 손익구조를 따졌을 때에 전혀 다른 성격의 금융상품으로 변모된 것이기 때문에 리스크가 있다는 사실을 투자자에게 숙지시킬 필요가 있다. 현재 발행되어져 있는 ELS 중에는 원금 비보장형이 보장형보다 더 많다(아래 표 참조).

 

                                        <표 2> ELS 유형별 발행 현황 (단위: 조원, %)
구분
21년 상반기
21년 하반기
22년 상반기
합계
공모
사모
합계
공모
사모
합계
공모
사모
원금보장형 6.7
(18.9)
6.4
(17.9)
0.3
(1.0)
16.2
(44.3)
16.0
(43.8)
0.2
(0.5)
5.5
(23.4)
5.1
(21.7)
0.4
(1.7)
원금비보장형 28.9
(81.1)
24.9
(69.9)
4.0
(11.2)
20.4
(55.7)
17.5
(47.8)
2.9
(7.9)
18.1
(76.6)
16.2
(68.8)
1.9
(7.9)
전체 35.6
(100.0)
31.3
(87.9)
4.3
(12.1)
36.6
(100.0)
33.5
(91.6)
3.1
(8.4)
23.6
(100.0)
21.4
(90.4)
2.3
(9.6)
(출처: 금융감독원)
 


하지만 원금손실이 가능한 구조라고 해서 지수가 선에 도달하는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원칙적으로 더 높아지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ELS는 구조가 일반적이지 않아 복잡한 상품이지, '위험한' 상품이라고 단순히 분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조건의 구간을 매우 넓게 잡으면 손실을 볼 확률 또한 얼마든지 낮춰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숫자도 0에 가까운 숫자를 곱하면 매우 작아지듯이 말이다. 그래서 판매하는 입장에서도 그리고 투자자 입장에서도 여전히 리스크가 제한적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ELS와 같은 상품은 소위 '고난도 상품'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의 '고위험 상품'으로 취급될지에 대해서는 원금손실 부분으로 인해 모호해지는 면이 있다. 어찌되었건 원금손실에 대해서 그리고 동시에 그 확률에 대해서는 분명히 고지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금융시장의 원리에 비추어 봤을 때 이번 사태의 핵심을 '위험 고지'의 문제로 축소하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한다면 우리 금융업계와 사회는 또 한번 다음의 사고를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 조 단위의 손실을 단순히 위험 고지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요즘 들어 실무자가 책임을 덮어쓰고 상부는 빠져나가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자주 포착된다.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은 조금 더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경제는 더 이상 이러한 대규모 손실을 감당 할 여력이 없다. 이제는 시스템의 근본적인 결함, 그 거대한 구멍에 주목할 때가 되었다. 그 손실은 한국이 왜 아직 금융수지로 먹고 사는 선진경제가 되지 못했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실의 크기만큼 학습이 이루어진다면 그 어떤 수업료도 기꺼이 지불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사고를 수습하는 방식에는 학습이 없고, 오직 반복만 있다. 이번 ELS사태에 있어서 어떠한 배경들이 작용하였는지 따져보자.

 
 


비이자수익과 금융경쟁력

은행에서 ELS를 그토록 많이 판매한 배경은 비이자수익을 늘리기 위함이다. 대출이자로 인한 예대마진 수익에 의존하는 것은 경기상황이나 금리변동에 따라 수익성이 변할 수 있다. 따라서, 이자수입 외에 별도의 수익원인 비이자수익 비율을 높이는 것이 은행들의 성과지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비이자수익에는 대표적으로 각종 수수료 수입과 트레이딩에서 오는 수익이 있다. ELS와 같은 금융상품의 판매수수료가 비이자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비이자수익에는 수수료 수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세부항목들에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보는 이들이 단순히 헤드라인 수치에만 치중하고 그것으로만 은행을 평가한다면, 은행은 더더욱 헤드라인 수치 자체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 것은 모두에게 득보다 실이 많아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비이자수익 중에는 단순한 금융상품의 판매수수료 또는 중개수수료 수입도 있지만, 트레이딩 수입과 같은 수익도 있기 때문이다. 고도의 전문성이 동원되는 고급 금융업의 영역이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이 영역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트레이딩이 돈을 벌 수도, 잃을 수도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을 하기 쉽다. 전문성 높은 금융기관이 할 수 있는 트레이딩은 다르다. 대형 은행의 경우 더욱 그렇다. 꾸준한 수익을 창출하는 트레이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JP모건 같은 은행들은 장외파생 트레이딩에서 오는 수익 비중이 높다. 골드만삭스와 같은 금융그룹들은 예금기관은 아니지만 채권과 외환의 트레이딩 수입이 주식중개수수료 수입을 꾸준히 압도한다.

ELS와 같은 경우도 국내 은행에게는 금융상품 판매수수료가 되지만, 해당 상품을 반대편에서 받는 외국계 은행이나 증권사의 입장에서는 트레이딩 수익이 된다. 판매하는 순간 판매사의 손에서는 떠나지만, 그 구조를 만든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는 그 상품의 만기까지 지속적으로 상품의 구조에 맞게 다이나믹하게 운용해야한다. 여기에 첨단 금융기법들이 동원된다.

필자는 은행들이 비이자수익 중에서도 비수수료수입이 되는 고부가가치 사업에 더 매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위험 가중치가 낮은 무위험 자산에 해당하는 금리와 외환 상품으로 이뤄진 장외파생시장이야 말로 금융의 본류이고, 이로부터 다양한 비지니스가 가능하다. 이는 본래 금융기관들 중에서도 은행들이 장악하는 시장이다. 당장 글로벌 은행들처럼까지 하긴 힘들더라도 점차 역량을 키워갈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기에는 현재 각종 제약도 많지만 말이다.

규제적인 제약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단순히 공부 잘한 인력들을 뽑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언어능력, 컴퓨터 능력, 수학 능력, 대인관계 능력 등 다양한 인력들이 어우러져 마치 고등학교 교실과 같은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때에만 가능하다. 군대식의 경직된 기업문화에서 탈피하여 글로벌 인재들이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한국의 조직문화도 바뀔 필요가 있다.

유수의 글로벌 은행들의 경우 비이자수익은 50%에 달하고, 한국의 시중은행들은 20% 수준이다(아래 표 참조). 영업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하기는 무리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유가증권과 파생상품 트레이딩과 같은 고부가가치 금융업을 점차 늘려가야 한다.



                                          <그림 1> 주요 해외·국내은행 수익구조
<그림 2> 주요 해외·국내은행 수익구조
                  출처: 국내 금융기관 업무보고서 및 각 은행 연차보고서



 마땅한 투자처의 부재

위에서 말한 한국 금융업 발전의 당위성이 무색하게 ELS 사태를 야기한 주된 원인 중에는 한국 자본시장의 퇴행성도 있다. 홍콩지수를 포함한 ELS는 한국에서만 팔리는 상품이 아니다. 그런데, 유독 한국이 가장 크게 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 중에는 한국인들에게는 마땅한 투자처가 부재했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부(富)가 부동산으로 몰리는 것과 똑같은 이유다.

2010년대에 주요국 주식시장이 금융위기를 뒤로 하고 상승세를 이어가던 시기에 한국의 주식시장은 오랜 기간 동안 횡보를 보였다(아래 표 참조). 2017년 한국에 정치개혁의 희망이 보이기 전까지, 2010년대 한국 주식시장은 금융위기 이후 가장 지지부진한 시장 중 하나였다. 그래서 당시 한국의 투자자들은 한국의 주식시장은 상승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자금은 제한된 투자 선택지에서 맴돌았다.

 

                   <그림 2> 주요국 주가지수 상승률 비교: 한국(흑), 미국(주황), 독일(파), 일본(초)
 <그림 2> 주요국 주가지수 상승률 비교 - 한국(흑), 미국(주황), 독일(파), 일본(초)
출처: 연합인포맥스

 
결국, 오늘의 ELS 사태의 배경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포함한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한 것이다. 저금리 환경에서 정기예금과 같은 채권형 상품에서 자금이 옮겨왔고, 더 공격적인 투자성향인 주식형 자금 또한 ELS에 몰렸다. ELS는 수익성과 안정성 측면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상품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수익성과 안정성을 둘 다 충족시켜주는 좋은 상품이 어떻게 이런 위기를 초래하였는가? 짧은 대답은 쏠림현상이다. 그런데, 한국의 소비자에게 투자처만 제한되어 있던 것이 아니라, 판매처도 제한되어 있다. 국내기관들이 독점하고 있는 구조에서 국내기관들이 전달해주는 상품 중에서만 투자처를 골라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래 설명할 쏠림현상으로 이어진다.

 
 

시장의 다양성과 역동성, 그리고 금융규제

모든 것은 변한다는 동양철학의 말이 있듯, 금융상품 역시 리스크 심의를 통과했다고 해서 그 내재적인 리스크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보장할 순 없다. 금융자산뿐 아니라 처음 승인이 되었다고 해서 사후관리가 필요 없는 것은 세상에 흔치 않다. 식품도 약도 자동차도 예술품도 다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가 변할 수가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부여한 고시와 같은 자격증 뿐이다. 그런 시험이나 인가제도에 익숙한 우리들은 뭔가 한 번 통과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 또한 하기에 따라 가치가 변하기 마련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극단적으로 보면 어떤 면에서는 금융상품에 대한 승인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승인 후에 잔존(Outstanding)하는 시장들에 대한 관리가 훨씬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금융계는 승인 자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시장의 변동에서 오는 리스크를 시장리스크라고 하는데, 이는 펀더멘털 요인과 수급 요인으로 나눠볼 수 있다. 흔히 금융권에서는 ‘수급이 재료를 압도한다.’는 말을 한다. 쏠림현상도 수급요인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쏠림현상은 우리가 그간 전통적으로 가장 안전하다고 믿던 부동산도, 미 국채 가격도 폭락하게 만들었다. 배의 한쪽으로 사람들이 치우쳐 있으면 상황이 변했을 때 반드시 사고가 나게 되어 있다.

이번 ELS 사태도 중국과 홍콩에서의 예기치 못한 펀더멘털 리스크가 실현되어 촉발되었다. 그런데, 이로 인한 시장의 반응하는 방식은 상당부분 수급이 지배하게 된다. 그렇기에 쏠림현상은 그 자체로 리스크를 생성해낸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펀더멘털 리스크가 불리한 양상을 보일 때 대처가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규제당국은 시장 전체의 균형을 감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는다면 금융시장은 스스로 균형을 되찾아가게 된다. 전 과정에서의 기회비용에 대한 상상력과 후과(後果)에 대한 예견이 동반되어야 하고, 때로 선택이 요구되는 일이기도 하다.

H지수 폭락은 글로벌한 현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렇게 한국에서의 ELS 피해가 타 국가 사례들에 비해 큰 기저에는 한국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다. 그 구조적 문제들은 한국의 금융권이 대대적으로 전개하는 캠페인이 주기적으로 실패를 되풀이하게 만드는데, 그 현상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양상을 띤다.

모든 악은 불찰(ignorance)이나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듯, 그 악순환의 시작은 무지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상품의 선정 단계에서부터 무지는 두려움을 낳아, 많은 우수한 상품들이 애초에 국내시장으로 소개되지 못한다. 반갑게 인사하고외국계 금융기관의 판매직원으로부터 상품을 소개받지만 설명을 들어도 자신할 수 없고, 그것을 상부에까지 전달하기란 더 어려워 대부분 채택을 주저한다. 그렇다고 해서 직접투자나 상품설계로 수익을 낼 자신은 더 없으니 판매수수료가 필요하다. 무지는 눈치보기와 냉소로 이어지며 부동산과 같은 국내 자산시장으로만 자금이 모이게 되고 선택의 폭은 해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진다. 한국의 금융권에서 오랜동안 되풀이된 패턴이기에 단순히 ‘경험부족’으로 치부하기는 곤란한 현상이다. 오히려 무지와 불찰이 겹친다 하겠다.

그렇게 공급이 부족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누군가가 채택을 하게 된다. 공신력 있는 주요 기관 몇 곳이 선을 보이고 나면, 종전까지 냉소로 일관하던 다른 기관들의 담당자들에게도 갑자기 크디큰 명분이 생긴다. 상품은 따질 것 없이 심의를 통과하게 되고, 갈 곳 없던 자금들이 집중되기 시작한다. 대형 광고가 등장하고, 마치 유행이 되어 안 하면 안 되는 분위기로 과열된다. 유행을 쏠림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고, 그 누구도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거나 경고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것은 판매사의 리스크가 아니기에, 판매사 내부에서 위험을 경고하기란 어려운 환경이다. 그런데, 규제당국은 침묵하고, 때로는 대세에 합세한다. 쏠림현상은 극에 달해서 결국 터진다. 그러나 제대로 된 원인 파악은 뒤로 한 채 사업부문만 접으면 문제는 덮어진다. 대규모 손실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교훈은 없다. 그리고는 다음 상품을 물색한다. 가급적 이전 것과는 최대한 겉모습이 다른 상품들이 선호된다.

쏠림현상은 그 자체가 새로운 리스크 요인이 된다는 점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쏠림현상도 시장이 작동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그런데, 한국 금융권은 특수한 원인에서 쏠림현상을 만들어낸다. 위의 일련의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우선적으로 모르는 데에서 오는 회피가 공급되는 상품의 다양성과 기본적인 라인업을 제한한다. 그래서 종국에는 한국인들의 취향에 맞는 몇 안되는 상품들만 승인이 되어 일차적인 도입 단계서부터 이미 쏠린 상태로 공급이 된다. 이러한 왜곡이 국내의 대기수요를 만나 시장의 쏠림현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그 과정에서 판매사들의 수수료수익은 예대마진 이자수익만큼이나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그것을 더 많이 차지하느냐를 가지고 치열하게 전쟁하니 쏠림현상은 한국의 금융권의 어두운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또 알 수 있는 것은 금융기관에게는 상품의 리스크가 사후적으로 증가된다는 사실을 경고할 유인이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판매사의 위치에서는 자신의 자본이 투여된 것이 아니기에 더 그렇다. 오히려 판매를 제한하는 행위는 수익성에 반하는 행위가 된다. 그리고 애초에 상품에 대한 전문성은 상품을 설계/운용하는 기관에게 있기에 판매기관은 쏠림현상을 감지할 수단 또한 부족하다. 그래서 규제당국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체적인 그림에 대한 고려 없이 당사자들 간의 불완전 판매 문제로 축소시켜서 넘어가는 방식만 되풀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막대한 손실보다도 더 무서운 것

이러한 금융손실로 우리 사회가 입는 대규모 피해에도 불구하고 손실금이 아깝지 않게 만드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어떠한 학습도 반성(reflect)도 없이 지나간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사고를 사후 수습하는 방식을 보자.

사고가 발생하고 난 후, 한국 금융업계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은 해당 상품을 더 이상 조직에서 다시 거론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독 국내에서 도드라진 괴이한 현상인데, 그간 효자상품이던 훌륭한 상품이 이제 와서는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금기사항이 된다. 일종의 악마화(Vilify)가 이뤄진 셈이다.

이는 사실 그간 상품의 도입 시점부터 판매 및 관리 과정에서 '승인' 자체에만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사고방식의 연장선에 있다. 왜냐하면 금기시하고 악마화하는 것은 결국 '승인'과 같은 거울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흑백논리 속에서 사태는 본질과는 무관한 방식으로 왜곡되고, 의미 있는 진상규명은 없다. 사실, 무엇을 악마화(Vilification)시킨다는 것은 사실 정치학적인의 용어다. 금융계의 언어가 우리 사회의 일부 정치 집단들의 언론과 본질적으로 같은 한, ‘글로벌 금융허브’라는 말은 현혹적인 구호에 불과하다.

이번에도 결국 우리 사회가 도출한 해법을 다룬 언론보도에는 '판매금지', '불완전 판매', '고강도 조사'라는 말들이 즐비하다. 이런 극단적 조치들은 금융업계의 본질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말들은 국제금융가에서 듣기에 '해경 폐지', '여가부 폐지', '공매도 전면금지' 이런 말들과 결이 같다. 호탕함을 주려는 농담 같은 말들이 실제 대한민국에서는 정부의 조치로 나올 때면, 한국사회의 예측 가능성은 떨어지고, 국제금융가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취약해진다.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본질은 비껴가고 당장의 사태수습을 위한 구호에 가깝게 들리기 때문이다.

해당 '사업부 폐지'라고 돌연 발표하는 경우도 흔하고, 또 한국금융업계에서 주기적으로 들리는 말 중에는 "야! 하지마!", “올스톱!” 이런 식의 말들이 대표적이다. ‘현대 한국인’이 현대사의 특정 시점부터 나타내기 시작한 특유한 반응방식이다. 이러한 습성은 “다이나믹 코리아”보다는 “드라마틱 코리아”라 하겠다. 이런 극단적인 방식들이 때로는 군대식으로 돌아가던 과거의 산업에서 장인정신과 같은 형태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고도의 균형이라는 역장(force field) 속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는 현대금융에 있어서는 저승사자와도 같은 망령이다. 한국에서 금융산업은 못다핀 꽃과 같은 상태다. 모든 씨앗이 숲을 이루는 나무는 아니듯, 돈으로 한다 해서 모두 금융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 제도와 규제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이렇듯, 금융산업을 접근함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큰 그림에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부터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 말했다, 변화는 새로운 시선에서 시작한다고. 누구 하나를 때려잡고 혼 내주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에 이르지 못한다. 범죄자를 아무리 몰아세워 처벌한다고 해서 범죄의 유인이 된 사회구조적 문제를 바꾸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처한 현실이 변하지 않는 이상, 문제의 본질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접근을 부채질하는 것은 한국인들이 한국식 언론에 길들여진 탓도 있다. 단순하고 화끈하게 들리는 발표들에 길들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 듣기 좋으라고 나오는 대책들이다. 하지만, 그러한 파장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국제금융가의 시각도 그렇다. 자극적인 발표를 해야만 한다면 공동체의 구성원을 때려잡겠다는 형태로 나오기보다는,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진보적이고 자유민주적인 구조개혁의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다.


 
 

 
본 글은 저자 개인의 의견이며, 한국행정연구원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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